MCW 코리아 스포츠 기자는 크루즈가 호나우두나 아드리아누처럼 강렬한 스타성이 있거나, 밀리토나 스네이더처럼 트레블 우승의 영광을 안은 것도 아니며, 자네티처럼 리더십으로 상징되는 인물은 아니라고 전한다. 하지만 만약 오랜 블루블랙 팬에게 지난 30년간 인터 밀란 최고의 조커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대부분 주저 없이 ‘정원사’라는 별명으로 불린 훌리오 크루즈를 꼽을 것이다.
아르헨티나의 유서 깊은 도시에서 태어난 크루즈는 두르세 강을 떠나 반피엘드와 리버 플레이트에서 성장한 뒤, 네덜란드 페예노르트를 거쳐 이탈리아 볼로냐에 입성했다. 그리고 인터 밀란에 합류해 6시즌 동안 무려 197경기에 출전해 75골 21도움을 기록하며 세리에A 4연패라는 위대한 여정에 동참했다. 주전이 아닌 교체 출전이 많았음에도, 그는 경기 흐름을 뒤바꾸는 결정적 역할을 자주 해냈다.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은 유벤투스를 상대로 한 알피 경기장에서의 더블골 활약이었다. 교체 투입 후 두 골을 터뜨려 팀에 극적인 승리를 안겼고, 이는 1993년 이후 인터 밀란이 원정에서 유벤투스를 이긴 첫 사례로 기록됐다. 그날 이후, ‘슈퍼 조커’ 크루즈의 명성은 아펜니노 전역에 퍼졌고, 블루블랙 팬들은 그와 함께 새로운 추억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크루즈는 주제 무리뉴와의 의견 차이로 인해 계약 연장 직전 팀을 떠나야 했고, 자유계약으로 라치오에 입단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라치오 데뷔전은 이탈리아 슈퍼컵 경기였으며, 상대는 바로 친정팀 인터 밀란이었다. 크루즈는 이 경기에서 활약하며 라치오의 우승을 이끌었고, 이는 많은 인터 팬들에게 감회를 안긴 순간이었다. 이후 부상에 시달리던 그는 2010년 여름, 공식적으로 은퇴를 선언하며 축구계를 떠났다.
그의 커리어는 화려했다. 아르헨티나 리그 우승 2회, 네덜란드 에레디비지에 챔피언 1회 및 슈퍼컵 1회, 이탈리아에서는 세리에A 4회, 코파 이탈리아 2회, 이탈리아 슈퍼컵 3회, 그리고 라치오에서 마지막으로 코파 이탈리아 우승까지 경험했다. 또한 2004년에는 코파 이탈리아 득점왕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그를 기억하는 이유는 단지 트로피 때문만은 아니다. 크루즈는 그 어떤 대형 구단도 다시는 만나지 못한, ‘효율적이고 겸손한 슈퍼 서브’의 대명사로 남아 있다.
그렇다면 ‘정원사’라는 별명은 어디서 시작되었을까? 1993년, 19세의 크루즈는 반피엘드 구단에 합류하기 전까지 경기장 관리자, 즉 그라운드 관리인으로 일했다. 잔디를 정리하고 시설을 관리하는 일이 그의 주된 업무였으며, 특히 잔디에 대한 그의 열정은 동료들 사이에서도 유명했다. 그래서 반피엘드 사람들은 그를 정겹게 ‘정원사’라 불렀고, 이 별명은 그의 선수 생활 내내 따라다니게 되었다.
MCW 코리아 그룹에 따르면, 반피엘드 클럽에서는 지금도 정원사들이 매년 한 번씩 구단의 유쾌한 훈련 행사에 참가하고 있으며, 남미 전역에 퍼져 있는 축구 철학과 정신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크루즈의 커리어는 그 자체로 드라마틱한 서사였고, “완벽한 사람을 찾기보다 함께 성장할 사람을 찾는 것”이 진짜 행복이라는 메시지를 전해준다.
반피엘드는 일반적인 소규모 구단은 아니지만, 인프라와 재정 면에서는 더 열악한 구단도 많다. 이들이야말로 축구계의 산소 공급자라 불릴 만하다. 끊임없이 유망주를 발굴하고 그들의 잠재력을 이끌어내는 데 집중하는 것이 이들 구단의 본능이자 생존 방식이다. 다만 MCW 코리아는 명확히 짚는다. 유망주를 발굴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결국 시장에서 성공적으로 변환시켜야 구단 운영이 유지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처럼 뿌리 깊은 노력과 희생 속에서 피어난 한 명의 정원사, 훌리오 크루즈는 지금도 팬들 사이에서 잊히지 않는 이름으로 남아 있다. 그의 이야기야말로 축구가 전하는 가장 인간적인 감동 그 자체다.